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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공부방 · 2026-08-21

마녀의 공부방 — 반도체·컴퓨팅

AI·과학·에너지 — 세계를 공부하는 눈

GPU가 부족하다는 말이 처음 나온 게 언제인지 기억하는가. 2022년 말, 챗GPT가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은 "GPU가 없어서 못 만든다"는 이야기를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이후 3년 넘게 GPU는 AI 서사의 주인공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서 조용히 올라온 글들을 들여다보면, 뭔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한 커뮤니티에서 점수 37점을 받은 글이 있다. 제목은 'GPU 과대광고 너머를 보자: AI 인프라의 물리적 측면'이다. 올라온 날짜가 7월 22일. 댓글 수는 적지만, 업보트 숫자가 말해준다. 사람들이 실제로 동의했다는 뜻이다. 글의 요지는 단순하다. 자본지출이 차세대 컴퓨팅을 향해 쏟아지는 동안, 투자자의 시선은 반도체 설계사와 빅테크에 고정돼 있지만, 진짜 병목은 그보다 훨씬 아래쪽 체인에서 생기고 있다는 것. 데이터센터 하나를 세우면 즉시 필요한 것들, 즉 냉각, 전력, 부지, 케이블, 심지어 화학물질까지. 그리고 같은 시기,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신호가 포착됐다. 8월 15일, 해커뉴스에서 3포인트를 받은 기사. EPA가 반도체 제조 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 승인을 둘러싸고 소송에 걸렸다는 내용이다. 표면적으로는 환경 소송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뉴스가 왜 지금 나왔을까. 반도체 공장은 10년, 20년 전부터 화학물질을 써왔다. 갑자기 소송이 붙는다는 건, 그 규모가 갑자기 커졌다는 뜻이다. 7월 27일에는 한국이 무려 9,5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파트너십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해커뉴스에 9포인트로 올라왔다. 9,500억 달러. 이 숫자를 단순한 투자 수치로 읽으면 안 된다. 이건 지정학적 선언이다. 여기서 나는 오래된 비유 하나를 꺼내고 싶다. 19세기 미국 금광 시대를 떠올려보자. 수많은 사람이 캘리포니아로 달려갔다. 금을 캐러. 하지만 그 시대에 실제로 안정적인 돈을 번 건 금을 캔 사람들이 아니었다. 곡괭이를 판 사람들, 청바지를 만든 사람들, 금을 감정하고 무게를 재고 '이것이 진짜 금이다'라는 인증을 해준 금 감정소 사람들이었다. GPU는 지금 이 시대의 금이다. 엔비디아는 금을 캐는 사람들에게 곡괭이를 파는 회사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그것도 아니다. 금 감정소. 즉, 이 모든 컴퓨팅 인프라가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물리적 레이어, 바로 거기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나열해보면 황당해진다. - 부지: 도시 외곽의 넓은 땅, 가급적 냉각 수원 근처 - 전력: 기가와트(GW) 단위의 안정적인 전력망 연결 - 냉각: 공기냉각이든 액침냉각이든, 열을 어디론가 빼내야 한다 - 네트워크: 수백 킬로미터의 광케이블 - 화학물질: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수십 가지 특수 화합물 - 인증과 규제: 지역마다 다른 환경법, 안전기준 GPU 칩 하나가 아무리 빠르게 발전해도, 이 물리적 레이어가 따라오지 못하면 그 성능은 데이터센터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서버실에 갇힌 채로. 흥미로운 건 구인 데이터다. 7월 24일에 집계된 구인 배치 리스트를 보면, 엔비디아가 'GPU 클러스터 AI/ML 인프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신입 포지션을 공개했다. 반도체 설계가 아니라 클러스터 인프라. 칩을 만드는 게 아니라, 칩들이 서로 연결돼 작동하게 만드는 일. 엔비디아 스스로가 레이어를 확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한국의 9,500억 달러. 이걸 단순한 숫자로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을 했는데, 조금 더 풀어보자. 미중 반도체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반도체 공급망은 지리적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생산국이다. 그런데 AI 시대의 메모리는 과거의 메모리가 아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 즉 GPU 옆에 붙어서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해주는 초고대역폭 메모리. 이게 없으면 엔비디아의 최신 칩도 제 속도를 낼 수 없다. 9,500억 달러는 그 핵심 위치를 굳히겠다는 선언이다. 지정학은 칩 위에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렌즈를 제안하고 싶다. UL 인증이라는 게 있다. 미국 가전제품에 붙는 안전 인증 마크다. 어떤 제품이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UL 마크가 없으면 미국 시장에서 팔 수 없다. 눈에 안 보이지만, 사실상 시장의 진입 장벽을 만드는 존재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환경 규제, 화학물질 승인, 수출 통제. EPA 소송은 그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GPU를 누가 만드느냐 못지않게, 어떤 화학물질로 만드느냐가 규제의 칼날이 될 수 있다. RSI라는 용어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Returning Senior Individual Contributor'의 약자라고 알려져 있다. Workday, Instagram, Box 등 여러 기업의 CTO들이 갑자기 사직하고 앤트로픽 같은 AI 회사에 개인 기여자(IC)로 들어갔다. 직책과 연봉을 낮추고, 기술의 최전선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지금 일어나는 일이 단순한 산업 싸이클이 아니라, 기술 문명의 방향 자체가 바뀌는 변곡점이라는 것을 그들은 피부로 느꼈기 때문 아닐까. 그 변곡점의 물리적 기반을 누가 쥐느냐. GPU를 설계하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하지만 GPU가 작동하는 환경, 즉 전력, 냉각, 케이블, 화학물질, 부지, 규제 인프라를 갖출 수 있는 나라와 지역은 훨씬 더 제한적이다. 그리고 그 제한성이 앞으로 10년의 지형도를 결정할 것이다. 마녀의 예언 — AI 패권 경쟁의 승자는 가장 빠른 GPU를 만든 곳이 아니라, 그 GPU를 가장 안정적으로 켜놓을 수 있는 전력과 냉각과 규제 인프라를 먼저 확보한 곳에서 나올 것이다. 관찰 기록: 2027년 2월까지, 주요 반도체 관련 환경·규제 소송(미국 기준)의 수가 2025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는지 여부를 공개 법원 기록(PACER)으로 확인한다 — 증가했다면 물리적 인프라 레이어가 GPU 설계 레이어만큼 전략적 병목으로 부상했다는 신호로 읽는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된 에세이이며,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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